Wir über uns-소개 Dokdo infos-정보 Forum-포럼 Nachrichten-기사 Wikipedia Links-링크
 
Home Login Kontakt Suchen
   
     
 
Alle - 전체
Aus Deutschland - 독일기사
Aus Korea - 한국기사
Sonstiges - 기타
 
 
 
 
 

메이지 정부 "독도는 우리와 관계없다"

....................................................... Eintrag: 26.08.2012
 

메이지 정부 "독도는 우리와 관계없다"

1887년 사마네현 보고로 지시, 1905년 조선 외교권 발탈후 자국 영토 편입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24일 내뱉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은 한마디로 '구문'(舊聞)이다. 일본 외무성이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해온 내용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어민들이 에도(江戶)시대 초기에 막부의 면허를 받아서 다케시마(독도)를 이용했다'는 주장의 근거는 1625년 당시 도쿠가와(德川) 막부가 내린 '다케시마 도해(渡海) 면허'이다.

 

이는 일본 측이 갖고 있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근거다. 하지만 당시 일본이 다케시마라고 부른 섬은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였다.

 

도쿠가와 막부가 자국 어민에게 울릉도로 항해할 수 있는 면허를 준 배경에는 조선의 울릉도 공도(空島) 정책이 있었다.

 

조선은 왜구에 의한 백성의 피해가 커지자 울릉도 등 접경 섬을 비우는 정책을 취했다.

 

이는 영토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를 틈타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근해 조업이 이어졌고, 급기야 도쿠가와 막부가 도해 면허를 발급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조선과 일본 간 영유권 논쟁의 초점은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였고, 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섬일 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력으로 볼 때 일본이 오랫동안 울릉도나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고,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돗토리번에 다케시마(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전달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조업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령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문서를 받아낸 일도 있다.

 

즉 노다 총리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적어도 17세 중후반에는 일본 스스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왜곡된 주장을 계속하는 근거는 당시 조선의 고문헌상 울릉도, 독도 명칭이 일관되지 않고 자주 바뀐데다 지도에 독도 위치가 정확하게 표기돼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지방 분권 성격이 강했던 일본과 달리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였던 조선이 외부 누출을 우려해 지도를 정확하게 그리지 못하게 한 당시의 상황을 일본 정부가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다 총리가 1905년의 일방적인 독도 편입 결정을 '영유권 재확인'이라고 주장한 것도 일본 측 문헌을 보면 허구성이 분명해진다.

 

일본 근대 내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이지 정부는 1877년 시마네현의 보고를 기초로 '울릉도(竹島)와 독도(外一島)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지시했다.

 

일본의 일부 학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外一島'가 독도인지 명백하지 않다"는 식으로 논점을 흐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역사적 문헌과 지도를 보면 울릉도는 물론이고 독도가 일본땅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일본은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사실상 박탈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독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한 것을 근거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Impressum l Rechtliche Hinweise l Konta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