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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부산 일본영사관 보고서 밑줄 친 부분에 “본도(=울릉도) 정동 약 50해리에 작은 섬 3개가 있다. 속칭 리양코도라고 하는데 본방인(=일본인)은 송도라 한다”라고 돼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 제공
일본이 독도를 시마네현에 강제편입하기 3년 전인 1902년에도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일본 공문서가 처음 공개됐다.
1902
년 5월 부산 주재 일본영사관이 일본 정부에 올린 '부산영사관보고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독도를 '송도' '리양코도(리앙쿠르
락스·Liancourt rocks)' 등으로 부르면서 울릉도를 독도의 '본도(本島)'로 기록했다. 이 사료는 재일사학자인
박병섭씨가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서 찾아낸 것으로,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이 입수해 14일 본지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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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는 7장 '조업 상황'을 적은 대목에서 "본도(=울릉도) 정동쪽 약 50해리(약 92㎞)에 작은 섬 3개가 있다. 속칭
리양코도라고 하는데 본방인(=일본인)은 송도(松島)라고 한다. 도처에서 약간의 전복을 채취할 수 있어서 본도에서 출어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섬 전체에 마실 물이 많지 않아 오랫동안 출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4~5일이 지나면 본도로 귀항한다"라고 적었다.
지금까지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무주지(無主地)'였던 독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해 왔다.
신
용하 울산대 석좌교수는 "1900년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를 본도로 죽도와 석도(=독도)를 포함하는 울도군을 우리
영토로 공표한 바 있다"며 "1902년 일본 경찰 보고서에서도 울릉도를 본도라 부르고 독도를 부속 도서로 보고 기록했다는 것은
당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간접 증명하는 것이므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