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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영토분쟁과 '불편한 진실'

....................................................... Eintrag: 29.08.2012
 

일본의 영토분쟁과 '불편한 진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이어진 일왕의 역사 문제에 대한 사과 언급으로 일본은 벌집 쑤셔놓은 듯 요란하다. 최근의 험악한 한일관계는 오랫동안 이 분야를 연구해온 필자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럴진대 일반 국민들이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작금의 신경질적인 행태를 이해하기는 지난할 것이다.

독도 문제에 대해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예상 밖의 격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보다는 일왕에 대한 사죄 언급이 결정적이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보인 이해하기 어려운 격한 반응은 독도 문제를 역사 문제로 인식하는 한국과 단순한 영토 문제로 끌고 가고자 하는 일본과의 간극과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상당함을 알고 있었지만 노다 총리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했던 고노 담화마저 부인하는 상황까지 치달을 줄은 몰랐다.

美 "일왕 전쟁책임 안묻겠다" 日과 빅딜

싱가포르의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3일자에서 일본ㆍ한국ㆍ중국 간 영토분쟁은 일본의 미흡한 과거사 정리 방식에 기인하며 일본은 독일의 전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국내외 지식인들로부터도 종종 제기돼온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애석하게도 이 주장은 현재의 동아시아 국제정치 상황에서 일본이 실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하는 배경에는 지난 1940년대의 '불편한 진실'이 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이 독일과 일본을 대상으로 전쟁 책임을 묻는 군사재판을 진행하면서 독일에 철저히 책임을 물었지만 일본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는 도쿄 재판에서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배경에는 미국이 전쟁 중 일본과 거래한 빅딜이 있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는 조건으로 일왕의 전쟁 책임을 묻지 않고 일왕제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일본이 독일과 같은 역사 반성을 할 가능성은 일찌감치 차단됐다.

둘째, 독일은 전쟁 책임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권총 자살을 하자 그를 둘러쌌던 책임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숨어 다니는 처지로 전락했다. 히틀러의 전쟁을 정당화해줄 정치세력도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와 달리 일본은 전쟁에 책임이 있던 일왕이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패전 후 출발한 일본 내각은 일왕을 보좌해 전쟁에 책임이 있던 정치가들이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게 됐다. A급 전범이었던 기시 노부스케는 냉전 발발로 복권돼 총리 자리까지 오르고 현재의 미일안보조약을 제정한 장본인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자민당의 많은 의원들이 전쟁에 책임 있던 인사들의 자손들이다. 경제대국 일본을 있게 한 것은 이러한 선조들의 희생이 바탕이 됐다고 인식하는 후손들이 현재 일본 보수정치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독일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日 보수정치인, 전쟁책임자 자손들

셋째, 독일은 미국과 소련이 동독ㆍ서독으로 양분해 점령정책을 펴면서 철저한 분리정책을 폈다. 반면 일본은 미국이 단독으로 간접통치해 분단을 면했다.

넷째, 독일은 7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다 프랑스ㆍ영국 등 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어 전후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전쟁 책임에 대해 확실한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일본은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육지로 직접 국경을 접하는 국가가 없었다. 이에 더해 주변국인 한국ㆍ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국가 건설이라는 국내 문제로 일본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패전에서 몇 년 지나지 않아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당시 압도적 경제력을 갖고 있던 미국은 일본을 냉전의 방파제로 활용하기 위해 기존 정책들에 역행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좋은'점령자로 일본을 지원함으로써 일본이 주변국 한국과 북한ㆍ중국에 전쟁 책임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지 않고 미국의 등 뒤로 몸을 숨기는 것이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몇 가지 이유만으로도 왜 일본이 독일과 달리 과거사 정리 방식에 미흡한가를 알 수 있다. 일본이 주변국과 벌이고 있는 작금의 영토분쟁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연계돼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 필자의 마음을 몹시 어지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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