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okdo] 독도에 대나무? 결국 ‘다케시마’는 없다 |
|
|
Autor : dokdo
Datum : 12-08-20 10:24
Kommunikation : 7171
|
|
|
독도에 대나무? 결국 ‘다케시마’는 없다
[강상헌의 바른말 옳은글] 독도는 ‘외로운 섬’이 아닌 ‘돌섬’이다
강상헌·언론인 | ceo@citinature.com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 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노래 뜻이야 가상(嘉尙)하다. 허나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습이 처량하다’ 느낌의 애상조(哀傷調)에 엉뚱한 ‘외롭다’ 이미지는 외려 독도를 훼손(毁損)하지 않는지 많이 저어한다.
‘고독(孤獨)한 섬’이어서 그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돌[석(石)]로 된 섬 ‘독섬’이 한자(漢字) 이름을 얻으며 독도(獨島)로 변한 것이다. 원래 말이 먼저고, 그 말에 합당한 글자가 매겨지는 것이 순서다. 한자만 보고, 또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선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외로운 섬’이라고 생각했을까?
옛적, 토지대장에 올리기 위해서는 이름을 ‘글자’(文字)로 바꿔야 했다. 담당 관리는 오래 써온 이름 독도의 ‘독’을 ‘거센 풍파와 당당히 홀로 맞선다’는 뜻으로 독(獨)자로 매겼겠다.
오달진 이름 ‘독도’가 생겨난 내역은 이렇게 톺아볼 수 있다. 한때 ‘돌섬(石島)’이기도 했다.
경상도 전라도의 남해안 지역 사투리로 돌은 ‘독’이다. 좀 작은 돌은 ‘도팍’ ‘돌팍’이라고도 하나 ‘독팍’이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다. 돌 많은 산(山), 바위로 된 산은 당연히 ‘독산’이다.
지금도 독, 독팍, 독산 등은 흔히 듣는 정겨운 사투리 말이다.
위풍당당, 동도(東島) 서도(西島) 두 개의 커다란 바위섬이 망망한 동쪽 대한해(韓國海)의 맥을 짚고 선 그 모습을 이르기에 ‘석도’보다는 역시 ‘독도’가 제격이다. ‘독섬’도 또한 멋지다.
간혹 고기 많은 그 섬 곁을 도둑걸음으로 지나던 일본 어부들에게 독섬의 ‘독’은 ‘도쿠’였다.
언어 구조 때문에 그들은 한 음절 발음을 잘 못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도케’로, 또 소리가 비슷한 대나무[죽(竹)]의 ‘다케(たけ)’로 변했다. ‘독섬’의 섬자(字) 또한 섬[도도(島嶋)]의 ‘시마(しま)’로 바뀌었다. 자꾸만 그들이 독도를 자기네 다케시마라고 한단다.
다케시마는 한자로 죽도(竹島)인데 정작 독도엔 대나무가 없다.
현장 근무자나 학자, 언론인 등의 일관된 보고다.
대나무 없는 독도에 무슨 죽도 타령? 그들이 독도(독섬)를 자기 식으로 부르던 것이 구전(口傳) 과정에서 ‘다케시마’로 잘못 전해진(訛傳) 것으로 풀이된다. 竹島라는 한자 이름에 맞춘 ‘의도적 와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죽도나 다케시마 마저 실은 ‘독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결국 ‘다케시마’는 없다.
독도학회 회장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제정치상 독도가 한국 영토인 점은 대마도가 일본 땅인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말글로 톺아본 독도의 본디와 마찬가지로, 외교적 정의(正義)와
절차도 독도가 영토적 시빗거리일 수 없음을 확인한다.
말글은 본디를 가리킨다. 진실을 품는 까닭이다. 진실은 힘이 세다. 일본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억지와 이를 합리화하는 외교적 꼼수가 아무리 정교해도 ‘본디’를 당할 수는 없다. 일본에 이를 추스릴 ‘역사’가 없음은 이미 확정적이다. 그들의 착각이나 원망(願望)과 달리 역사는 본디를 찾는 학문이다.
독도는 치우(蚩尤)신왕 눈 부라린 양 용맹무쌍한 바위섬이다. 독도를 ‘외롭다’고 노래하지 말라. 외로워서 독도가 아니고 돌섬이어서 독도다. 독도는 외롭지 않다.
|
|
|
|